넷플릭스 영화 마더
마더 스토리
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제작한 영화 마더! 는 2017년 10월 19일에 국내 개봉한 영화다. 마더! 는 '귀신 들린 집'을 모티브로 한 전형적 공포영화처럼 시작한다. 숲 속 외딴곳에 집이 한 채 있고, 아내(제니퍼 로런스)와 남편(하비에르 바르뎀)만 거기에 산다. 그런데 글 쓰는 게 직업인 남편은 세상과 고립된 그 집에서 창작에 몰두하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데 아내가 도와줄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 집에 어떤 커플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게 되면 퍼니 게임처럼 느껴진다. 그더라 그 집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진입하고 왜 그 공간에서 그 모든 혼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혹시 이건 루이스 부뉴엘의 작품들, 말하자면 '절멸의 천사' 같은 영화인 걸까. 그러다 아내가 만삭이 되면서 초자연적 공포가 몰려오면 '악마의 씨'가 되고, 결정적 순간에 남편이 입을 열면 영화 '곡성'의 클라이맥스가 떠오른다.
애러노프스키의 '마더!'는 성경의 이야기를 채우고 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캐릭터를 신으로 본다면, 그 집에 처음 찾아온 커플은 아담과 이브 같다. 창조의 날들이 끝날 때마다 신은 이 영화의 아담이 좀 수상한데도 보자마자 호의를 표현한다. 아담이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할 때 엿보이는 그의 옆구리 상처는 이브를 만들 갈비뼈를 떼어낸 흔적이다. 그렇게 창조된 이브는 그 다음 날 집으로 찾아온다. 그 둘은 결코 만지면 안 되는 귀중한 크리스탈을 깨뜨린 후 서재에서 추방된다.
금기 외 선악과를 따 먹어서 에덴 밖으로 내쫓긴 구약의 상황 그대로다. 몸이 아픈 아담은 실낙원의 결과로 필멸의 존재가 된 인간의 운명을 드러낸다.
후반부에 제니퍼 로런스가 연기한 캐릭터가 낳는 아기는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보인다. 마더가 후미진 공간을 간신히 찾아 아이를 낳은 뒤엔 성경의 동방박사들이 그랬듯 선물이 답지한다. 광기에 들뜬 군중은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팔을 뻗은 아기를 옮긴 끝에 살해한다.
이후 사람들이 아기의 몸을 뜻어 먹는 끔찍한 모습은 "이것은 내 살이다"라며 예수가 상징적으로 떼어 준 떡을 제자들이 먹었던 성찬식을 글자 그대로 그려낸 난폭한 유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끌어들이는 것은 기독교적 맥락만이 아니어서, 산 채로 희생자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잉카제국의 제의가 재현되기도 하고, 파괴의 순간이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으로 바뀌는 순환의 사이클이 힌두교신화와 그대로 겹치기도 한다.
극 중에서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 영화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원형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엔딩크레디트의 직업이나 지위로 표기된 수많은 소문자 배역 명칭들 가운데서, 단 하나 대문자로 새겨진 신만이 대체 불가능한 교유한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는 패턴화 된 창조의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 마더!의 핵심은 제니퍼 로런스가 연기한 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종반 직전까지 밑도 끝도 없는 수난과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에 자연스럽게 넌더리를 내게 된다. 그런 애러노프스키가 그렇게 볼 수밖에 없도록 영화적 형식을 집중시켰다. 영화 마더는 롱숏을 자제하고 공간에 대한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은 채 한 인물만 따라다니기에, 관객은 두 시간 내내 그 집만을 보면서도 그곳의 구조나 인물의 동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영화 마더는 곧 집이고 나아가 세계 자체다. 마더의 수난과 집의 훼손과 세계의 파괴는 함께 진행된다. 그곳에 온 불청객들은 내내 떨어뜨리거나 흘리고 부수는데, 그 과정에서 데거나 토하고 다치거나 죽기까지 한다. 금연을 비롯한 그 세계의 규칙은 번번이 위반되고, 갓 수리된 그 집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무시되며, 비행을 막으려던 마더는 끝내 모욕받는다. 집의 생명력인 크리스털이 깨지고 마더가 보는 환상 속 집의 심장까지 점점 타들어가니,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다. 세계는 철저히 파괴된 후 처음부터 다시 창조되어야만 한다.
애러노프스키의 신화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시선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극 중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마더와 두번째로 중요한 캐릭터인 신은 인간이 아니다. 영화가 철두철미한 일인칭으로 진행되고, 뛰어난 배우가 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이 이입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뿐이다. 종반 직전까지 준인공이 무지막지한 사건을 끝도 없이 겪는 한 사람인 줄 알고 공감하며 가슴을 치던 관객들은 결국 완전히 다른 시점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계이기에 악역은 인간들의 몫이 된다. 관객이 체험하게 되는 것은 난입한 인간들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끝없이 당하는 대자연의 처지인 것이다. 집에 온 인간들이 저지르는 악행도 문제지만,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자체도 문제가 된다. 이제 관객은 그 모든 인간들을 쓸어버리고 싶어 진다.
순환하는 세상의 원리 속에서 극 중 인간들의 운명은 상대적으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와 전혀 상관없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고, 대자연은 선택적으로 보복하지 않는다. 인류의 종말이 세계의 희망이 되는 상황, 서늘하고도 특별한 영화적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마더는 거대한 이야기를 한 손에 비틀어 쥔 채 강렬하게 폭주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과대망상과 자아도취 사이를 오가기도 하는 애러노프스키의 뻔뻔하고 야단스러운 영화들은 종종 지독히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이런 일급 배우들과 개성 넘치는 훌륭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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