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텀 스레드 사랑 이야기
나의 아름다운 뮤즈, 넌 누구지?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는 제목의 의미 그대로, 보이지 않는 실을 통해지어 올린 관계의 역학이 시종 보는 이를 압도하며 깊고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1950년대 런던의 패션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팬텀 스레드에는 알마(비키 크리프스)가 레널즈(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장면들이 중간중간 들어있다.
일종의 액자 형식을 만드는 이 장면들은 시간 순서로 보면 레널즈가 독버섯이 든 요리를 두 번째로 먹고 쓰러진 후, 다시 말하면 이야기의 맨 끝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알마와 레널즈의 사랑 이야기는 이미 완료되었기에 수정될 수 없고,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은 이제 그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숙고해야 한다. 극 중에서 알마의 설명을 듣는 자가 의사인 하디(브라이언 글리슨)이었다는 사실은 그 사랑이 말하자면 병리학적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랑하는 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두 연인이 벌이는 이 지독한 열정의 게임에는 아닌 게 아니라, 병적인 면모가 있다.
하지만 하디가 의사이면서도 종반에 이르도록 환자에게 다가가지조차 못하고 철저히 무기력했다는 사실에서 암시되듯, 그 병은 고쳐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뜻하지 않게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병을 불러들여 움켜쥠으로써 작동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레널즈가 아니라 알마인 것일까.
팬텀 스레드, 두 가지 에피소드
아침 식탁에서 조안나(카밀라 러더퍼드)에게 짜증을 낸 동생 레널즈를 향해 누나 시릴(레슬리 맨빌)은 이렇게 조언한다. "조안나는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이제 때가 됐어. 사랑을 구걸하고 버티고 있잖아. 10월 드레스를 줘서 보낼게." 구걸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가 갖고 있다는 것이고, 오로지 상대의 자비심에 의존해 그걸 얻어내려 하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게중심이 자신에게만 쏠려 있음을 문득 느낄 때마다, 레널즈는 옷 한 벌의 추억으로 상대를 간단히 정리한다. 하지만 알마는 그렇지 않다. 이건 뛰어난 창작자의 삶에 잠시 머물러 영감을 제공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극 중 존재의 의무를 다하는, 예술가와 뮤즈에 대한 뻐한 이야기가 아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독특한 내부 규칙을 지닌 집단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와 그 집단에 막 들어간 아웃사이더의 관계를 즐겨 다른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권력의 현격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그 둘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의 세기나 방향이 상호적이고 비등한 것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알마는 레널즈의 빛나는 예술을 장식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카페에 찾아온 레널즈가 음식을 주문하면서 웨이트리스 알마에게 받아 적은 메모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나중에 계산서를 가져다줄 때 자신의 이름과 친밀한 인사말을 적어 두 번째 메모를 직접 건넨다. 그 첫 만남은 그의 눈에 그녀가 들었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 역시 그녀의 눈에 든 것이다. 나중에 레널즈가 청혼을 하며 의사를 물을 때도 알마 역시 상대에게 똑같이 의사를 묻는 절차를 밟는다.
일급 디자이너인 레널즈가 "언젠가 당신도 옷에 대한 취향이 바뀔 거야"라고 단정할 때도 알마는 "그건 모르죠. 난 내 취향이 좋아요"라고 당당하게 응수한다. 레널즈는 인간을 고정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시릴의 판단에 찬사를 보내며 "단골들이 좋아해서 시릴이 옳은 게 아니라, 시릴이 옳아서 시릴이 옳은 것"이라 말할 때, 그는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판단의 내용이 아니라 판단을 하는 사람의 불변하는 특성을 신뢰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방법과 순서에 따라 수염을 다듬고 옷을 입는 레널즈의 세심한 모습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첫 모습이라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강박적이고 자기통제력이 강한 이 예술가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최적의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일단 어긋나게 되면 스스로를 변화시켜 상대에게 다시 다가가는 게 아니라 변화할 리 없는 관계에 종언을 고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레널즈가 열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는 재혼해 그를 떠났다. 떠나는 엄마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에게서 배운 솜씨로 며칠밤을 새워 웨딩드레스를 짓는 것밖에 없었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엄마에 대한 원초적인 상실감이다. 옷을 만드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이 남자는 자신에게 생명을 주었고 또 그 생명을 이어가게 할 방법까지 알려준 후 사라진 엄마를 영원히 앓고 있다. 그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의 드레스를 만들기 때문이며 엄마와는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널즈가 자신의 옷에 꿰매어 항상 지니고 다니는 엄마의 사진 속 모습은 그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다. 레널즈는 여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드레스를 입힘으로써 오래전 어머니가 재가한 그 저주받은 날의 상처에 무망 하게 덧씌운다. 자신의 의상실을 경영하는 누나 시릴과 옷 짓는 일을 함께하는 직원들과 옷을 입어줄 고객들까지, 레널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온통 여자뿐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그는 엄마를 분유 한 여자들로 자신의 삶을 두른 채 열여섯을 영원히 되풀이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저주받은 채로.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다가 엄마의 침물을 깨고 대신 알마가 등장한다. 엄마의 유령과 때마침 들어선 알마가 같은 숏 안에서 잠시 공존하도록 표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숏은 관계의 디졸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레널즈의 시점에서 엄마의 유령이 내내 고정 카메라에 붙박인 반면, 방에 들어선 알마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이동 카메라에 담겨 있는 것도 범상치 않다. 레널즈가 청혼을 하게 되는 지점이 엄마의 유령을 떠나보낸 직후라는 것 역시 눈길을 끈다. 엄마의 자리를 폐한 알마는 이제 새롭게 아내의 자리를 만들어 그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레널즈는 규칙도 안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 했던 게임인 눈싸움의 형태로 상대를 바라보면서 레널즈는 독버섯 요리를 꿀꺽 삼킨다. 마침내 레널즈는 변화를 수용한다. 그렇게 레널즈가 알마의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고 그 규칙 하에 진행되는 게임을 엄중히 수행함으로써 그 사랑은 완성된다. 그 게임을 하기 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독버섯까지 먹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마는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연인에게 독버섯을 먹여 복수하려는 게 아니다.
알마는 레널즈에게 약함을 선물하고 싶어 할 뿐이다. 강한 척하는 연인에게 약함을 선물하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채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연인에게 죽음에의 가능성을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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